아름다운 사물을 곁에 두고 오래 바라보며 정을 주는 일을 좋아한다. 잘 만들어진 사물은 그 자체로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그 사물을 일상적으로 바라보고 다루는 경험 또한 아름답게 한다. 석사 시절부터 물레로 여러 가지 형태를 성형한 후에 이들을 서로 접합하여 최종 형태를 완성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물레성형기법이 지니는 정원(正圓)의 형태적 제약에서 벗어나서, 다양한 방향성을 지니는 역동적인 실루엣을 만들어내는 재미가 매우 컸다. 물레로 성형된 형태들을 마치 블록 쌓기 놀이를 하듯 서로 이어붙인 다음 전체적인 모습을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형태를 가다듬을 때에는 이 형태에 온전히 몰입해야 한다. 최종적으로 완성된 형태가 독특하지만 억지스럽거나 유난스럽지 않아야 한다. 일상의 공간 속에서 사용자의 삶과 잘 어우러져야 좋은 공예품이다. 작업은 늘 어렵다. 해를 거듭해도 작업에 대한 고민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나는 무의식 속에 이 고민거리들을 화두로 던져두고 이리저리 떠다니게 한다. 무의식은 나의 역사를 담고 있는 우주 같아서, 살면서 체득한 지식과 수많은 경험, 다양한 감정들이 이 안에 부유하고 있다. 그리고 새로 들어온 고민은 이미 부유하고 있던 정보들과 함께 떠다니다 어느 순간 서로 엉겨 붙고 이들은 함께 해결의 실마리를 만들어낸다. 물레 앞에서는 머리를 비우고 손이 저절로 움직이게 둔다. 그러면 눈과 손이 골똘히 생각을 하며 바쁘게 움직인다. 두루뭉술했던 생각들이 점차 명확해지며 간직했던 고민들이 물레 위에서 또렷하게 풀어진다. 이렇게 무의식의 힘을 빌어서 나다운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다보면 나의 삶과 작업이 같은 결을 타고 흘러간다. 하루하루를 살며 축적된 아름다움에 대한 나의 경험이 내 손으로 완성된 형태에 저절로 담긴다. 평소 나를 가만히 행복하게 해주었던 기억들이 고스란히 도자기에 투영된다. 완성된 도자기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나만 읽을 수 있는 암호로 쓰인 일기장 같다. 내가 만든 도자기를 바라보는 나의 감정은 이렇듯 애틋하다. 나의 내러티브를 담은 도자기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각자의 감정과 기억을 건드리는 힘이 있다면 좋겠다. 나아가 그의 일상 속에서 그와 내 도자기가 그들만의 새로운 관계를 오래도록 쌓아갈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다. 2020년 9월, 유희송